도둑고양이의 일기
나만의 낭만 야구 - 야구란 나에게 (1) 본문
야구와 참 어울리는 단어는 "낭만"이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야구의 기억은 내가 기억이란 것을 할 수 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빠는 야구를 좋아하셨다. 물론 지금도 좋아하신다. 인정을 하지는 않지만. 주말이고 쉬는 날이면 아빠는 늘 야구를 보셨다. 당시에는 이승엽이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있었는데 매일 같이 중계를 해줬었다. 아빠는 시간이 여유롭지 않아 쉬는 날이면 보셨지만, 나는 야구가 평일이 아닌 쉬는 날에만 하는 경기인줄만 알았다.
아빠를 좋아해서 아빠 옆에 항상 맴돌았지만 아빠는 항상 야구만 보셨다. 딸과 놀아주는 방법을 잘 몰랐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아빠를 맴돌면서 봤었던 것이 야구와의 첫 만남이었던 셈이다. 작은 공놀이, 글러브, 그리고 배트. 무엇인가를 치고 나면 손을 위로 뻗으면서 달리는 모습이 종종 보였다. 저 사람이 이승엽이라고 했다. 나는 이승엽 말고 다른 사람도 있냐고 물었다. 아빠는 이승엽을 보기 위해서 본다고 했었다. TV 넘어 보여지는 희열에 엄청난 일을 했나보다 싶었다.
내가 본 첫 야구는 그랬다.
시간이 지나서 2009년, 나는 미국에 갔다. 단 1년만 살다 올 예정이었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이었다. 나는 뉴욕 바로 옆에 있는 뉴저지 주의 작은 도시, 허드슨강 바로 옆에 있는 아파트에서 살았는데 아침이 되면 눈 앞에 뉴욕 맨하튼이 한눈에 들어왔었다. 물론 아침에 허겁지겁 나가서 등교하느라 제대로 본적은 없지만, 독립기념일이나 마틴루터킹 데이가 되면 조지와싱턴 다리에 밝게 불을 켜주는 것을 보고선 뭔지 모를 웅장함을 느끼곤 했다.
그리고 나와 야구의 두번째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뉴욕에는 야구팀이 두 개가 있다. 바로 아메리칸리그의 뉴욕 양키스와 내셔널리그의 뉴욕 메츠가 있다. 나는 많이 들어봐서 익숙한 뉴욕 양키스를 보기로 결심을 한다. 야구의 쥐뿔도 모르지만, 아는 내용이라곤 체육시간에 배운 것이 전부지만 나는 귀신에 홀린 듯 야구를 매일 보기 시작했다. 모르는 것은 찾아봤다. 룰북이던, 인터넷 검색이던, 아빠에게 물어보던, 야구의 세계는 정말 깊고 넓고 광활해서 매일 같이 새로운 스포츠 같았고, 매 이닝 전혀 지루할 틈이 없었다. 나에게 야구는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저녁에 펼쳐질 경기에 기대를 하고, 경기가 끝나면 복기할 수 있어 기대가 되는 그런 존재였다. 야구는 내가 하루를 갈 수 있게 해주는 존재였다. (Baseball was what kept me going for a whole day)
그 야구공 하나가 좌우,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글러브에 안착하기도 하고 날라가버리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고. 그 공 안에 담겨있었던 나의 열정과 꿈을 담은 무언가의 존재가 내 눈 앞에서 왔다리 갔다리 아른거렸다. 푸른 들판 위에, 가운데 동그란 마운드. 그리고 4개의 베이스 안의 규율 속에서 정정당당하게 승부하는 것이다. 너 한번, 나 한번씩 공격과 수비의 기회를 가지고.
핀스트라이프(pinstripe)의 주인공들은 나의 영웅이었고, 동경의 대상이었다. 특히, 데릭지터는 나의 우상이었다. 과연 09년도의 양키스는 그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의 존재였다. 다 가지고 있었고 다 해내고 있었으니까. 양키스는 그 해에 15개의 역전승, 그리고 포스트시즌에서는 2번의 역전승을 기록했었다. 1972년 이후 3연속의 역전승이라는 비정상적인 기록을 했을 정도였다. 역전(逆戰) 이라는 단어도 어느 상황이던 정말 짜릿하지만 역전승이라는 단어는 그 어디도 쓰일 수 있는 말이다.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단어는 "Walk-off"이다. 말 그대로 걸어나가라는 것이다. 홈경기인 경우, 9회 말 공격 찬스에 모든 노력을 기울여 역전하면 그대로 홈베이스를 밟고 걸어서 나갈 수 있다. 그게 야구의 짜릿함이다. Walk-off에 대한 믿음과 기대가 있었기에, 마치 요기베라의 명언인 "끝날 때 까지 끝난 것이 아닌" 야구는 단순한 공놀이가 아니라 나에게 있어서는 무언가에 대한 희망과 믿음을 심어주는 낭만을 담은 그 어떤 것이었다.
(추가: 또한 walk 라는 단어가 참 재미있는데 보통 야구 용어로 포볼 (또는 볼넷, 사구四球) 을 영문으로 walk라고 한다. 말 그대로 편하게 걸으라는 뜻이다. 하지만 득점은 run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run-off라고 쓰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지 궁금하긴 하지만, 폼 안나게 달려서 나가는 것보단 걸어서 승리를 만끽하라는 의미 같기도 하다. 내 멋대로 해석이겠지만)
더더욱이나 MLB에서는 끝장승부제가 있기에, 무승부란 없다. 게임의 밸런스가 무너질 때까지 밤이고 새벽이고 야구장의 불은 꺼지지 않는다. 승부가 날 때까지 내 눈에서도 불은 절대 꺼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마이클 케이의 마지막의 게임 콜 선언 "Game Over! The Yankees win!"이라는 말이 울려퍼질 때의 느꼈던 감동과 희열은 내 세포 하나하나가 다 기억할 것이다. 물론 ALDS, ALCS 우승 또한 그 누구보다 짜릿했고 월드시리즈 우승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지만, 로드리게스가 복귀하여 쳤던 2점 홈런 walk-off는 더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로 벌어졌던 수많은 싸움들 속 우승 속 walk-off들. 9회말 2아웃에서 모두가 홈 베이스에서 환호하길 기다리는 그 순간 마저도. 나에게는 열정이었고, 더 바랄 것이 없는 낭만 그 자체였다.
야구는 변수가 많은 스포츠이기에 겸손해야한다. 얼마전에 들었던 캐스터의 말이었다. 그래서 야구는 인생과도 같다. 인생은 정말 많은 변수가 있고 선택의 연속이다. 투수부터 구종, 구위, 구속을 고민한다. 물론 포수도 같이 고민한다. 그리고 선택한다. 던진다. 타자는 칠지, 말지, 밀어칠지, 당겨칠지, 반스윙을 할지, 기습번트를 댈지, 고민한다. 그리고 선택한다. 그 선택에 따라 수비가 움직이고 제 자리를 찾는다. 이 모든 것이 길지 않은 시간에 일어난다. 그깟 공놀이라고 하지만서도, 이 공 하나가 불러 일으키는 수 많은 변수와 그리고 그것을 대응하기 위하여 수초에 발동하는 직관과 본능. 야구는 그런 야수(野手)의 야수(野獸)와도 같은 싸움이다.
나에겐 단순한 공놀이가 아니다. 그 공에 담긴 나의 추억 한방울들이, 나의 희망, 그리고 그 어떠한 가슴 뭉클한 무언가를 담고 있는 나의 낭만인 것이다. 야구 인생이며, 나는 인생 야구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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